스페인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 로에베는 전 세계의 공예가를 대상으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해 올해 10번째를 준비하는 공예상은 매년 수천 건의 공예 작품이 접수되는 국제적이고 규모 있는 행사다. 그런데 가방과 옷을 만드는 패션 브랜드가 왜 공예가에게 상을 주기 시작했을까?

로에베 재단은 로에베에서 문화 예술 분야를 후원하기 위해 1988년 설립한 민간 재단이다. ⒸLOEWE FOUNDATION

정다혜 작가(좌)와 박종진 작가(우)는 2022년, 2026년 공예상 수상자다. 한국 작가들도 꾸준히 최종 후보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LOEWE FOUNDATION
로에베는 원래 공예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로에베는 19세기 중반 스페인의 가죽 장인 공방에서 출발해 패션 하우스로 성장했고, 지금도 마드리드에서는 로에베의 가죽 공예 학교가 장인의 기술을 후대로 전하고 있다.
공예상을 만든 이는 당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조나단 앤더슨이다. 앤더슨은 개인적으로 20세기 영국 도자기를 꾸준히 수집할 만큼 공예를 좋아했다. 당시 그는 오늘날의 공예를 조명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소개할 만한 국제적인 상이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앤더슨은 부임한 지 3주 만에 공예상을 만들고 싶어 했고 로에베 재단과 함께 공예상 기획을 주도했다. 상의 목적은 로에베의 이름과 영향력으로 새로운 공예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초기 로에베 매장. 1층 벽에 스페인어로 가죽 제품(ARTÍCULOS DE PIEL)이라고 쓰여있다. ⒸLOEWE FOUNDATION

(좌) 조나단 앤더슨은 2013년부터 2025년까지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담당했다. ⒸLOEWE (우) 조나단 앤더슨이 소장중인 존 워드의 도자기들 ⒸART BASEL
여기까지만 보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그저 공예를 좋아한 디렉터의 개인적인 프로젝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앤더슨이 로에베를 떠난 이후에도 공예상은 계속되고 있다. 개인의 관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브랜드의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공예상은 로에베에 어떤 가치를 만들었기에 지금도 계속 운영되고 있을까?
앤더슨은 로에베 같은 오래된 브랜드가 역사와 왕실 납품 같은 과거의 권위만 반복해서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로에베를 지금 시대의 ‘문화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공예는 앤더슨 개인의 관심사이자, 전통을 활용해 지금 시대에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로에베와도 잘 어울리는 주제였다.
앤더슨이 말하는 ‘문화 브랜드’란 그저 특정 문화를 추종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그 문화에 관련된 새로운 창작자와 작품을 발견하고 브랜드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브랜드다. 그리고 여기서 문화는 한 시대의 생각과 감각이다. 즉 문화란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만들고,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앤더슨은 사람들이 ‘왕실 납품’ 같은 역사 마케팅에 면역이 되었으며, 로에베는 지금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THE GUARDIAN
로에베가 공예를 바탕으로 문화 브랜드가 되려면 장인과 공예 기술을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브랜드 밖의 공예가와 작품을 만나며, 지금 시대의 공예가 보여주는 새로운 생각과 감각을 계속 받아들여야 했다. 공예상은 로에베가 외부의 공예 문화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심사위원단. 로에베는 공예가, 디자이너, 건축가, 박물관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와 함께 동시대 공예에서 주목할 가치와 방향을 선택한다. ©LOEWE FOUNDATION